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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橫口式石槨의 기원과 그 의의
초록
일본열도에서는 7세기를 전후하는 시기에 주요 묘제로서 이전의 횡혈식석실과는 다른 횡구식석곽이 출현한다. 이 횡구식석곽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아서 출현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의의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먼저 횡구식석곽의 출현문제에 대해서는 자체발생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명확하게 하고, 석실의 형태, 규격, 역사적 배경 등으로 보아 백제로부터 영향을 받아 축조된 것으로 상정하였다. 능산리형석실로부터 영향을 받아 출현하면서도 각 고분별로 재지기술에 의해 축조되었기 때문에 규격성이 떨어지나, 7세기 후엽에 다시 영향을 받으면서 더욱 石槨化가 현저해 지는 방향으로 축조되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백제에도 횡구식석곽과 완전하게 같은 형태의 석실이 전혀 없기 때문에 횡구식석곽의 피장자를 그대로 도래인으로 상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 횡구식석곽이 중점적으로 축조되는 河內지역에는 도래계씨족의 활약 기록이 많기 때문에 도래계씨족이 매장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고자료로 상정할 수 있는 보통의 도래인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마지막으로 횡구식석곽이 처음 출현하는 시기부터 능산리형석실의 규격과 유사한, 어느 정도 규격성을 갖춘 횡구식석곽이 도입된다. 더욱이 改新의 詔가 공표될 즈음 이러한 횡구식석곽을 참고하여 薄葬令이 공표된다. 이에 따라 7세기 중엽에 횡구식석곽이 확산되나 여전히 대형 횡혈식석실은 축조되는 등 그 실효성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7세기 말에는 왕릉에도 채용되고 대형 횡혈식석실이 소멸하는 등 실효성이 커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횡구식석곽은 백제 능산리형석실 규격과 기술 등에 영향을 받았으나 재지의 축조기술이 접목되어 축조되고, 薄葬令의 시행과 함께 점차 확산되었다.
키워드
- 제목
- 일본 橫口式石槨의 기원과 그 의의
- 제목 (타언어)
- The origin and significance of the ancient Japanese stone-chamber tombs
- 저자
- 김규운
- 발행일
- 2017-08
- 유형
- Y
- 저널명
- 백제학보
- 호
- 21
- 페이지
- 35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