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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 멸망 전후의 元·高麗·明 관계
초록
원의 북상 이후 요동을 두고 대립했던 원과 명은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위해 고려의 협력을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었다. 고려가 명과 국교를 개시하자, 원은 톡토부카를 고려왕에 옹립함으로서 고려를 압박해 정요위 공격에 동참시키려 했다. 결국 우왕 책봉을 통해 고려와의 구질서를 회복시키고 원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성립시켰으나, 고려는 정요위 공격에 동참하라는 원의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은 채 명과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했다. 따라서 고려는 원과 명 모두에 사신을 파견하는 양면외교를 지속함으로서 동아시아에서는 고려·원·명이 일정정도 삼각균형이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고려와 원의 잦은 왕래는 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여·원 연합군이 요동을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 명은 서둘러 丁彦 등의 고려인 358명을 고려로 귀환시키면서 고려를 회유하기 시작했다. 고려도 아유시라다라 카안 사망으로 급격히 원이 쇠퇴하고, 원, 나가추와 고려를 각각 고립시키려는 명의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자 貢馬 5,000마리를 명에 보내 적극적인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등의 유연한 대외정책을 실행했다. 그러나 1387년 5월에 나가추의 투항과 다음해 4월에 원의 소멸로 14세기말 동아시아의 국제관계가 다원적 관계에서 일원적 관계로 변모함에 따라 초강대국이 된 명은 고려에 대한 유화책을 철회하고 강경책으로 돌변했다. 명은 원 소멸 전에는 강경책과 회유책을 반복했지만 원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주로 對고려정책은 회유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나가추의 투항과 원의 멸망은 명의 對고려정책를 강경책으로 급속히 변모시켰고, 이것은 고려 멸망까지 지속되었다. 명은 고려에서 파견된 사신들을 구금하거나 입경을 거부했으며, 나아가 고려에 철령위 설치를 통보하는 등의 강도 높은 강경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명의 강경책은 최영의 요동정벌을 야기해 결과적으로 고려가 멸망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키워드
- 제목
- 元 멸망 전후의 元·高麗·明 관계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Relations among Yuan, Koryo and Ming around Fall of the Yuan Empire
- 저자
- 윤은숙
- 발행일
- 2014-08
- 유형
- Y
- 저널명
- 역사문화연구
- 호
- 51
- 페이지
- 121 ~ 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