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世紀 地域과 世界의 만남 : 天主敎의 福建 傳來

Encounters of A Region and the World in the 17C: Introduction of Catholic in Fujian
  • 원정식

초록

기독교는 15세기 말 서유럽의 팽창과 함께 유럽의 종교에서 세계의 종교로 성장해 갔다.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포르투갈의 보교권을 둘러싸고 교황청을 비롯한 유럽 세계 내부에서 일어난 증오와 갈등이었다. 이는 16세기 후반 포르투갈의 국력이 약해짐에 반해 스페인과 프랑스의 위상이 높아지고 선교가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해짐에 따라 더욱 고조되었다. 게다가 유럽의 많은 수도회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해외 선교를 놓고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며,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수회가 이룩한 큰 성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수도회들에게는 선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밖에도 선교지 사회에 대한 수도회간의 인식의 차이는 선교 방법의 차이를 가져왔고 이것 역시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 유럽 각국의 국적을 가진 다양한 수도회의 선교사가 또 다른 문명국 중국에서 만나게 되면서 유럽내의 제모순이 중국에서 다시 재현되었다. 중국에 먼저 진입한 예수회는 포르투갈 보교권을 인정하고 중국의 높은 문명을 인정하며 성공적으로 적응하면서 기반을 잡아갔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요구에 따르지 않은 여타 수도회는 포르투갈의 거부로 쉽게 중국에 입국할 수 없었으며 다른 루트도 명조의 엄격한 海防 정책으로 여의치 않았다. 이에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한 후 갖은 노력 끝에 예수회 선교의 사각지대인 복건의 복안현에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포르투갈 보교권이 복건의 선교 판도를 복잡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복건의 천주교 전파에는 초기부터 중국인의 능동적 참여가 중요했다. 다른 성이나 해외에 거주하면서 천주교를 믿은 복건인들이 돌아와서 가족과 고향에 천주교를 전했으며 이때 종족 관계는 중요한 선교 수단이었다. 또 지식인이나 신사들은 자신들의 학식과 관계망을 이용하여 선교에 참여했는데, 선교사에게 한어를 가르치고 선교사의 조수로서 활약했으며 천주교 관련 도서를 번역하고 편찬하기도 했다. 또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가 복안에서 선교 기반을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예수회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신사들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에서도 두 수도회의 복건 정착에 중국인과 더불어 예수회의 선교 활동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복건에서의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비현실적 선교나 예수회에 대한 적대감은 이후 복안현을 시작으로 복건 전역에서 반기독교 운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선교 기반뿐만 아니라 예수회의 그것도 크게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들이 제기한 의례논쟁은 선교 방법상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문제가 되었고 敎界 내의 갈등을 넘어서 교황과 황제의 갈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결국 강희제가 천주교 관용 정책을 再考하고 옹정제와 건륭제가 천주교를 嚴禁토록 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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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世紀 地域과 世界의 만남 : 天主敎의 福建 傳來
제목 (타언어)
Encounters of A Region and the World in the 17C: Introduction of Catholic in Fujian
저자
원정식
발행일
2010-02
유형
Y
저널명
역사문화연구
35
페이지
229 ~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