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1905년 대한적십자사의 탄생과 그 의미
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1905년 대한적십자사가 탄생되게 된 배경과 실제 운영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당시 대한제국이 주권 국가임을대외적으로 선포하기 위하여 적십자를 설립하고 조약을 체결하였지만,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제국은 1903년 1월 8일 제네바협약을 비준하였다. 2월 7일에는 1864년 제네바협약 제 원칙을 해전에 적용하는 협약, 3월 17일에는 1899 년 헤이그 제2협약(육전의 법 및 관습에 관한 협약) 등을 비준하였다. 이 3 개 협약은 무력충돌 상황에서 적용하는 제네바법과 헤이그법으로 오늘날국제인도법의 모태가 된다. 1904년 헤이그협약의 ‘전시 병원선에 대한 국가이익을 위하여 부과되는 각종의 부과금 및 조세의 지불면제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대한적십자사 설립 이전, 중립국화를 시도하려고 하였던 고종은 적십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러일전쟁기 대한제국 언론에서도 세계 각지역 적십자 활동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1905년 10월 27일 칙령 47호에 의해 대한적십자사가 설립되었고, 규칙이 결정되었으며, 12 월 12일 칙령 54호에 의해 대한제국적십자관제급규칙이 발표되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설립되자 황성신문에서는 적십자 취지, 개신교와 적십자와의 차이,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 당시 일본적십자사의 활동 등이 상세하게 보도되었으며, 적십자사 운용을 위한 협률사 연극 광고 모금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대한적십자사의 임원을 살펴보면, 총재는 황족들이 맡았고, 실무직은 군인 및 일반직이 맡았다. 초기 대한적십자사는 경복궁 영추문 앞에 위차하였고, 적십자병원도 같은 곳에 있었다. 그런데, 실질적인 업무는 병원 업무를 제외하고는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1907년 3월 고종은 적십자사 회계국장인 박영대를 일본으로 파송하여 일본적십자사의 제반사무와 규칙을 시찰하게 하였고, 4월 간호부를 조직하여 해외업무를 할 인물을 인명하여 명부를 선발 파견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5월까지 실제적으로 업무가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박영대는 7월 귀국 후 얼마 가지 않아 사의를 표하게 되었으며, 근무 인원들에게 월급이 체불될 정도로 예산이 없었다. 부족한 예산은 당시 일본적십자사 경성위원지부 회원모집을 통해 충당되었고, 대한적십자사의 업무는 일본적십자사로 이관되기 시작하였다. 1908년 10월 31일 경희궁 내에서 열린 일본적십자사 한국총위원부 1회총회에서는 운영 기금이 모집되었고, 각 지역에서도 적십자사가 조직되었다. 결국 1909년 6월 7일 대한국적십자사관제급규칙 폐지에 의하여 대한적십자사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되었다.
키워드
- 제목
- 1905년 대한적십자사의 탄생과 그 의미
- 제목 (타언어)
- The Origin of the Korean Red Cross Society in 1905 and Its Significance
- 저자
- 장경호
- 발행일
- 2025-12
- 유형
- Y
- 저널명
- 한국민족운동사연구
- 호
- 125
- 페이지
- 5 ~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