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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말부터 조선초기에 이르는 시기의 동아시아 정세는 한 가지 대세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 상황변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신흥 제국 明이 강력한 새로운 왕조로 등장하였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겠지만 明이 요동지역을 넘어 과거 元나라 영역을 그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 북원세력을 완전히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고려(조선)는 신흥강대국 明의 군사적 압박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명의 요동진출을 달가와 하지 않았고, 내심 북원과의 연대나 여진을 통한 견제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明은 북원과 고려(조선)의 연대를 강력히 저지하고, 마찬가지로 여진을 끌여들여 조선을 견제하면서 변방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명나라의 성급한 고려-북원 차단을 위한 철령위 설치 선포는 고려의 명에 대한 경계심을 대결적 적개심으로 바꾸어 놓게 되었고 양국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다. 당시 명나라의 정책은 성급한 것이었지만, 이는 그만큼 원・명교체기에 주인이 불분명한 만주지역으로 진출하려는 고려를 견제할 필요성이 절박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성계의 회군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영토문제는 고려(조선)와 명의 중요한 국제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양국 모두 대결적 무력 사용을 자제하는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장차 만주일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물론 변경을 안정화 시키려면 여진을 자국의 藩籬로 끌어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였다. 특히 조선은 신왕조 개국 후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동북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태종 4년(1404) 명에 사신을 보내 동북지역 10處 여진인에 대한 관할권 인정을 요구하여 관철시키고 있다. 朝明 양국은 여진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려는 귀속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갖가지 사유를 명분화하였으며, 회유는 물론 강력한 군사작전을 펴기도 하였다. 초기에 명나라는 여진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의 부족과 조선에 대한 군사적 긴장을 회피하기 위해 조선에게 10처 여진인에 대한 관할권을 승인하였지만 명나라는 뒤늦게 여진 귀속 경쟁에 나서면서 조선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명나라는 이미 조선 관할이 되어있던 여진을 회유, 압박하여 명나라 衛所制에 편입되도록 함으로써 조선과 분리시키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명간 여진 초무 경쟁의 대표적 사례는 童猛哥帖木兒 초무를 둘러싼 갈등이다. 10처 여진인 중 童猛哥帖木兒 집단은 여진의 핵심세력 중 하나였고, 명나라가 이미 조선으로부터 관직을 받은 童猛哥帖木兒를 회유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童猛哥帖木兒가 명나라에 들어가 관직을 수여받음으로써 조선의 10처 인민 영속권은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었으나 그가 일시적으로 鳳州(즉 開元을 말함)로 이주함으로써 직접적인 갈등은 잠복하였다. 이후에도 童猛哥帖木兒를 둘러싼 조선과 명나라의 갈등과 경쟁은 계속되었다. 여진 귀속을 둘러싼 朝・明간 각축은 결과적으로는 어느 쪽에서도 느슨하게 관할되는 요인이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북방의 광활한 여진 잡거지역이 조・명 양국에게는 일종의 완충지대가 되게 되었다. 또 나아가서 그로부터 1백여년 후에는 여진세력이 성장할 수 있었던 먼 원인이 되었다. 조선초기 10처 여진인에 대한 조선의 관할권 확보는 특히 조선의 동북지역 영토 확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선은 초기에 여진과 친밀관계, 회유를 통해 안정적으로 변경지역을 관리하였으나 명나라와 여진 귀속 경쟁으로 10처 지역에 대한 지배권이 위협받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자, 조선은 강력한 군사활동에 의해 이에 대한 항구적인 확보를 추구하였다. 세종대 4군 6진에서의 많은 군사활동에 이어 郡, 鎭을 설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려말부터 이어져 온 10처 여진인 관할권 확보와 직결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두만강 이북지역의 공험진 지역까지를 우리 영역으로 기록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지역이 고려말~조선초에 명나라와의 협상 끝에 인정받은 10처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키워드
- 제목
- 麗末鮮初 朝・明간 女眞 귀속 경쟁과 그 意義
- 제목 (타언어)
- The competition of Where Jurchen Has to Belong between Chosun and Ming Dynasty from the end of Koryo to the early of Chosun
- 저자
- 유재춘
- 발행일
- 2012-08
- 유형
- Y
- 저널명
- 한일관계사연구
- 호
- 42
- 페이지
- 37 ~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