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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Experience of the Western Civilization in Modern Transition Period
초록
본고에서는 1862년 에도막부가 유럽에 파견한 분큐사절단과 1871년 메이지 정부가 미국과 유럽에 파견한 이와쿠라사절단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근대전환기 서양체험의 실상과 그 의의, 서양문명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였다. 분큐사절단과 이와쿠라사절단의 일차적인 임무는 외교교섭이었지만 서양문물과 제도를 세밀히 견문하고 조사한다는 사명도 띠고 있었다. 외교교섭에서 분큐사절단은 개항․개시의 연기에 성공했으나 이와쿠라사절단은 첫 방문지인 미국에서 조약개정 교섭이 좌절되고 말았다. 분큐사절단의 외교교섭에서는 서양나라들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두 사절단의 규모는 비슷했으나 구성면에서 이와쿠라사절단이 정부 지도자를 중심으로 파견했기 때문에 중량감이 있었으며 정부 각 부문의 주요 관리가 이사관으로 임명되어 조직적으로 전문분야를 분담해 상대적으로 치밀한 조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또한 분큐사절단은 ‘양이’의 상황 속에서 귀국 후 견문의 성과가 막부의 정책에 직접 반영되지 못하였으나 사절단 참가자가 정권을 장악한 메이지정부에서는 이와쿠라사절단의 경험이 여러 경로를 통해 실제 정책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만국박람회는 사절단의 서양체험 중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분큐사절단이 참관한 제2회 런던만국박람회는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참가한 것은 아니었으나 주일 영국공사가 스스로 출품물을 수집해 일본전시장을 마련했다. 분큐사절단은 암스트롱포를 비롯한 서양의 산업, 기계제품에 압도당해 에도막부가 만국박람회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골동품 같은 공예품만 전시된 데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이에 비해 빈만국박람회는 메이지정부가 본격적으로 일본을 서양세계에 알리기 위해 준비해서 참가한 첫 만국박람회였고 이와쿠라사절단이 참관했다. 아직 근대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일본에서 눈에 띄는 공업제품을 출품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지만 박람회에 대한 일본인의 이해는 10년 전인 런던박람회 시기와는 비할 수 없이 깊어졌다.
키워드
- 제목
- Japanese Experience of the Western Civilization in Modern Transition Period
- 제목 (타언어)
- 일본 고분시대 횡구식석곽(橫口式石槨)의 형식학적 연구
- 저자
- 김규운
- 발행일
- 2015-08
- 유형
- Y
- 저널명
- 일본연구
- 호
- 24
- 페이지
- 157 ~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