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의 눈에 비친 강화도의 제 모습

A View of Ganghwa Island(江華島) from the Perspective of the Modern People

초록

근대 이후 강화도의 모습은 어떠하며, 강화도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는 개항 이후부터 1950년 한국 전쟁 이전 시기까지 강화도에 관한 기록물을 망라해 수집해 이를 분석하고자 했다. 역사적 기록물, 문학 작품, 내국인 기행문, 강화인 회고록, 신문과 잡지 기사, 외국인의 여행기 등 근대 강화도 관련 자료를 대상으로 삼았다. 1876년 개항 후 1910년까지의 기록물에 나타난 강화도의 모습은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강화도는 최초의 기독교(개신교) 전파와 신앙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새로운 문물 수용의 최첨단 지역이었다. 둘째, 강화도는 보창학교, 계명의숙, 합일학교 등 강화도 내 지식인들이 사립학교를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근대 신식교육과 계몽운동이 활발했던 신교육의 요람이었다. 셋째, 강화도는 1900년대 후반 강화도 의병 활동 등 정치적, 사회적 소요와 항일 저항이 일어난 공간이었다. 이러한 장소성을 종합할 때, 이 시기 강화도를 ‘새로운 문물 수용 및 계몽 교육의 선구지’라 평할 만하다. 일제강점기에 강화도는 1919년에 3.1.만세 운동이 가열하게 일어나 항일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1920년대 이후로 ‘여행 명소 및 풍요의 고장’으로 각인되었다. 일제의 여행 장려, 탐승지 개발 계획에 의해 강화도가 수도 인근 여행 명소로 부각된 것도 특징이다. 이때 지식인들은 강화도를 역사적 요람지로 인식하고, 망국의 현실과 과거 역사를 오버랩하면서 자기 성찰과 불투명한 미래를 전망하는 기억의 장소로 호명해냈다. 또한 강화도는 감과 쌀 등 농산물과 어산물이 풍족하고 면포, 화문석 등 제조업이 발달한 곳으로 알려졌다. 강화도는 배륙(排陸) 사상이 강하고 자족 자립이 가능한 풍요로운 곳이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강화도는 사회 재건에 대한 희망이 다른 지역보다도 강했다. 강화문화관을 건립하고 민생과 복지, 경제 발전을 위한 실천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어수선한 정치 상황과 한국 전쟁을 겪은 후, 강화도를 군사적 긴장감이 감도는 위험 지역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요컨대, 근대인의 눈에 비친 강화도는 산물이 많고 풍요로운 땅이자 근대 교육의 산실이며 애국의 고장이면서 긴장과 화합이 공존하는 점이지대로 자리해 왔다 할 것이다.

키워드

근대기 강화도계몽 교육의 산실여행 명소풍요의 고장재건과 희망의 공간Ganghwado in modern timethe cradle of enlightenment educationtraveling attractionsplace of affluenceplace of reconstruction and hope
제목
근대인의 눈에 비친 강화도의 제 모습
제목 (타언어)
A View of Ganghwa Island(江華島) from the Perspective of the Modern People
저자
이민희
DOI
10.46331/jis.2020.08.33.7
발행일
2020-08
유형
Y
저널명
인천학연구
1
33
페이지
7 ~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