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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기존의 역사인식에서 광무황제와 융희황제는 일제의 강압 앞에서 무기력한 군주였고, 이러한 이미지는 일제 식민사관의 대한제국 인식과 일치한다. 일제 식민사관은 대한제국의 군주들 속에서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제는 대한제국기 광무황제는 물론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 이후 융희황제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융희황제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기존의 역사인식을 바꿀 수 있다. 융희황제에 대한 재평가는 긍정적인 역할의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다. 융희황제의 정치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 즉 ‘통치도구(統治道具 Instrument of Japanese colonial domination)’로서의 존재 그리고 ‘저항상징(抵抗象徵 Symbol of anti-colonial resistance)’로 나눌 수 있다. 융희황제는 통감부시기에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며, 서거 때까지 황제의 존재 자체를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일제의 통치도구가 된다. 그러나 융희황제는 일제에 의해 억압받고 위축되어 있는 대한제국 국민의 일제에 대한 저항상징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융희황제 뿐 아니라 융희황제가 설행한 황실의례의 정치적 의미는 대부분 ‘통치도구’였다. 하지만 ‘저항상징’의 의미도 있다. 1907년 즉위부터 1910년 한일병합조약까지의 통감부 시기에서 남순행과 서순행을 통하여, 또한 1910년부터 서거 해인 1926년까지의 총독부 시기에서 함흥능행을 통하여 저항상징의 의미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오순탄신의 아악과 무동정재에서는 일제에 의한 왜곡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여기서는 주로 통치도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융희황제가 행한 황실의례는 일제의 침략이 조직화되고 노골화되던 통감부 시기와 한국을 완전히 합병해버린 총독부시기에 이루어졌으므로, 융희황제의 정치적 의미는 저항상징 보다는 통치도구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통치도구라는 의미가 실질적, 적극적, 전체적이었던 반면, 저항상징이라는 의미는 상징적, 소극적, 부분적이었다. 일제에게 융희황제는 통치도구였고, 저항상징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한국인에게 융희황제는 허용된 범위 내에서 저항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저항상징의 의미를 다양한 자료를 이용한 심층 연구를 통하여 더욱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키워드
- 제목
- 융희황제 재위 시 황실의례의 정치적 의미와오순탄신 거동
- 제목 (타언어)
-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the Royal Rites and the 50th Birthday Party in the Reign of Yunghee Emperor
- 저자
- 나정원
- 발행일
- 2016-09
- 유형
- Y
- 저널명
- 무용역사기록학
- 권
- 42
- 페이지
- 37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