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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 천주교의 유입과 유교사회의 대응
초록
본고는 19세기 강원지역에 천주교가 유입‧정착되면서 벌어지는 유교사회의 대응 양상을 고찰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먼저 강원지역에 천주교가 유입‧정착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1795년 을묘사옥과 1801년 신유사옥 등 조선 조정의 천주교 탄압과 함께 경기도 양평과 여주에 거주하였던 천주교인들이 강원도 원주와 횡성 등지로 이주하면서 강원지역에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유입‧정착되었다. 이후 강원도 내의 역로를 경유하면서 대관령 너머의 영동지방까지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다만 유림세력이 권력화 되었던 강릉이나 토착문화가 강했던 삼척은 외래 종교인 천주교가 거의 정착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천주교에 대한 유교사회의 대응 양상을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첫째, 화서학파가 전개한 척사운동의 논리와 방식을 살펴보았는데, 특히 이항로와 홍재구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화서학파의 종장인 이항로는 교리적 차원에서 천주교에 대한 유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거나, 천주교를 서양의 군사적 위협과 연관시킴으로써 국가 안위를 위해 천주교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화서학파의 마지막에 자리한 홍재구는 『정속신편』에서 서양 사람들의 음란함을 부각시키며 윤리적 문제를 거론하거나, 비상식적인 유언비어를 근거로 천주교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이는 향촌사회에서 유교의 통제력이 급속히 줄어들고 천주교의 교세가 확장되는 데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둘째, 186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어 사실상 자유로운 포교 활동이 허용된 이후, 향촌사회에서 벌어지는 유교와 천주교의 갈등 양상을 살펴보았다. 1893년 횡성의 유생 횽효백‧안준문이 르메르 신부를 무고한 사건, 같은 해 양양의 향반 이사일이 불라두 신부를 죽인다고 협박한 사건, 그리고 1899년 안변의 유림세력 동심회 회원들이 안변 본당 관하의 공소를 습격한 사건 등이다. 이를 통해 향촌사회에서 새롭게 부상한 천주교 권력과 유교적 질서를 고수하는 유교 세력 간의 갈등이 점차 집단화되고 심화되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키워드
- 제목
- 강원지역 천주교의 유입과 유교사회의 대응
- 제목 (타언어)
- The Influx of Catholic and the Response of Confucian Society in Gangwon Area
- 저자
- 안세현
- 발행일
- 2015-04
- 유형
- Y
- 저널명
- 고전과 해석
- 권
- 18
- 페이지
- 247 ~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