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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공신 녹훈은 국가에 정치적ㆍ군사적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포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 가운데 原從功臣은 正功臣 외에 직ㆍ간접적으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공신 칭호이다. 조선 전기 확인되는 여진인 원종공신은 63명이며, 개국원종공신이 10명, 좌익원종공신이 42명, 좌리원종공신이 6명, 정국원종공신이 5명이다. 여진인에 대한 원종공신 녹훈은 가문적 배경과 세력 규모가 아닌 귀화인이면서 조선에 공로를 세운 이들을 대상으로 녹훈하였다. 조선전기 여진인 원종공신의 녹훈 추이를 살펴보면, 여진인 원종공신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여진인 원종공신 감소는 조선 사회에서 여진인의 비중이 낮아진 것을 의미한다. 원종공신에 녹훈된 여진인을 부족 별로 살펴보면, 개국원종공신에서는 토착 여진이 다수 녹훈되었지만, 개국원종공신 이후부터 원종공신에 알타리ㆍ올량합이 다수 녹훈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 조선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여진인의 주류가 토착 여진에서 알타리ㆍ올량합으로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성계의 최측근 여진인 이지란과 관련한 인물이 개국원종공신에 다수 녹훈되었지만, 이들은 조선에서 가별초를 보유하고 있었고, 동화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건국 초 조선과 여진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여전히 왕권은 불안정하였다. 이징옥의 난은 불안한 왕권의 대표적인 증거이다. 때문에 세조는 이징옥의 난에 가담하지 않은 여진인을 대상으로 좌익원종공신에 녹훈하였다. 성종의 좌리원종공신에는 좌익원종공신 1, 2등에 녹훈된 여진인이 다수 녹훈되었다. 이는 이들이 조선과 지속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조선 국왕의 지지 세력이 된 것을 의미한다. 중종의 정국원종공신에도 여진인이 녹훈되었는데, 정국원종공신 1등에 녹훈된 동청례는 정국원종공신임에도 이례적으로 처형당한 여진인이다. 그는 ‘종친이 각자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라고 발언한 신복의의 주장에 휘말려 처형당하였는데, 이는 그의 조선 내 사회적 위치가 신장하였음을 의미한다. 결국 조선의 여진인 원종공신 녹훈은 여진 귀화인에게 조선 사회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내 입지가 가장 높은 여진인은 원종공신에 녹훈된 여진인이었다 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조선 전기 여진인 原從功臣의 녹훈 현황과 특징
- 제목 (타언어)
- The Conferment and Characteristicsof Jurchen Wonjong Gongshin in Early Chosŏn
- 저자
- 김호철
- 발행일
- 2025-12
- 유형
- Y
- 저널명
- 조선시대사학보
- 호
- 115
- 페이지
- 111 ~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