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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전쟁과 메이지 초기 일본 군진의학의 제도화: ‘누마즈 모델’의 형성과 통합을 중심으로
초록
보신전쟁은 서구 근대식 화력이 초래한 대량의 부상과 위생 문제를 야기하며 전장 의료를 단순한 구휼이 아닌 군대의 조직과 규정의 문제로 전환시켰다. 영국 공사관 의사 윌리스와 시덜의 외과 처치, 그리고 요코하마 군진병원에서의 치료 통계는 전상 처치, 병원 운영, 위생 관리 등의 표준화가 신정부군의 전투력 보존을 위한 긴급한 과제로 부상했음을 보여준다. 패전 후 시즈오카번은 에도에서 스루가로 이동한 구 막부계 의료 인력과 서양 의학 자산을 누마즈에 재배치해 병원과 학교를 결합한 군사·의학 교육 체제를 운영했다. 이른바 ‘누마즈 모델’의 핵심은 의학 지망생을 병학교 내 ‘특수 병과’로 편제하고 시험을 통한 선발과 진급을 제도화해 군의를 관료제적으로 양성하려는 시도였다. 이는 서양 의학 지식의 수용을 넘어 교육, 평가, 임용을 연결하는 실력주의적 측정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군의 관료제의 ‘실험장’으로 기능했다. 그러나 교육 배경이 다른 인력을 하나의 관등 체계로 정렬하고 전장 외상 처치의 표준화 및 현장 운용을 잇는 통합적 인사 체계를 확립하는 일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웠으며, 이는 곧 중앙 군의학교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1871∼1872년 중앙집권화가 진전됨에 따라 누마즈병학교는 병부성 산하로 편입되었고, 그 인력과 자산은 도쿄의 신생 육군 체계로 선별적으로 통합되며 해체됐다. 이 과정은 메이지 육군 의료 체계의 성립이 서구 제도의 일방적 이식도 구체제의 직선적 계승도 아닌 ‘이식과 변용’의 하이브리드적 결합이었음을 입증한다. 본 연구는 메이지 유신을 정치 권력의 단절과 기술·제도 운영의 연속성이 교차하는 복합적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군사 의료 영역에서 패자의 유산이 전략적으로 전유되고 통합된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키워드
- 제목
- 보신전쟁과 메이지 초기 일본 군진의학의 제도화: ‘누마즈 모델’의 형성과 통합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The Boshin War and the Institutionalization of Japanese Military Medicine in the Early Meiji Period: Focusing on the Formation and Integration of the ‘Numazu Model’
- 저자
- 이규원
- 발행일
- 2026-02
- 유형
- Y
- 저널명
- 역사문화연구
- 호
- 97
- 페이지
- 243 ~ 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