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규의 「感事三十四章」 연구 (1) — 창작 동기 및 역사․지리 인식과 서적․예술 애호 양상 —

A Study on Lee Hak-gyu's 「Feelings 34 Chapters (感事三十四章)」 (1) — Motive of writing, awareness of history and geography, and aspects of love for books and art —

초록

이학규는 辛酉獄事(1801년)로 인해 김해에서 24년간 유배 생활을 겪으면서도 수많은 현실주의적인 시작품을 창작하고 다방면에 걸친 실학적 저술을 남겼다. 이학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해배되던 해(1824년)에 「感事三十四章」을 지어, 조선 후기의 학문․예술․문화․생활상을 서른 네 수의 오언율시로 표현했다. 이학규가 「感事三十四章」을 짓는 데는 왕세정의 『觚不觚錄』이 창작 동기를 제공했다. 이학규는 왕세정이 『觚不觚錄』에서 명나라 말기의 현실을 바라보던 문제의식에 자극을 받아, 본인이 살고 있는 조선 후기 사회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되돌아보았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에 대한 인식과 서적․예술의 애호 양상을 시로 표현하고, 기존에 ‘하층민’·‘농업’·‘시골’의 환경과 생활상을 주로 조명하던 데에서 벗어나, 서울과 김해의 ‘상층민’·‘상업’·‘도시’의 물질문화와 풍속 세태를 적극적으로 형상화했다. 본고는 그중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지리에 대한 인식과 서적․예술의 애호양상을 다룬 「感事三十四章」의 1∼6장을 집중적으로 고찰했다. 1, 2장은 箕子의 교화를 통해 우리나라가 검박한 풍속을 지니게 되었으며, 유가적인 義의 정신에 입각해 사치스러운 풍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6장은 단군조선-기자조선을 우리 역사의 기원으로 여기고 洌水와 浿水를 우리 영토 경계의 근간 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보여주었다. 3장은 19세기 초반 서울지역 장서가에 소장된 다양한 서적들과 그에 대한 이학규의 전문적인 관심과 이해, 당시 문인들이 패관소설을 열독하던 풍조를 소개했다. 4, 5장은 서화․금석문에 대한 높은 감식 안과 확고한 비평적 견해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서화․금석문의 주요 동향을 설명했다. 「感事三十四章」의 1∼6장은 다음과 같은 학술적 의의가 있다. 첫째, 이학규의 박학하고 고증적인 실학자의 면모와 19세기 초반 서울지역의 학술 경향, 서적 열람 문화, 예술 동향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이학규가 近畿南人 학맥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箕子朝鮮에 입각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小中華를 자처하는 문명관을 명확히 하는 부분, 허목과 이익이 매우 가치 있게 여기며 주목했던 『大東金石書』를 열람할 수 있었던 정황, 시의 自註에서 『星湖僿說』을 자세히 참고한 흔적 등에서 두드러진다. 셋째, 조선시대 문인들은 왕세정의 박학·고증적인 학자로서의 면모와 史料類 筆記 성격의 저술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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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학규의 「感事三十四章」 연구 (1) — 창작 동기 및 역사․지리 인식과 서적․예술 애호 양상 —
제목 (타언어)
A Study on Lee Hak-gyu's 「Feelings 34 Chapters (感事三十四章)」 (1) — Motive of writing, awareness of history and geography, and aspects of love for books and art —
저자
이국진
DOI
10.23945/kss.46.91.124
발행일
2023-12
유형
Y
저널명
한국실학연구
46
페이지
91 ~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