凝窩 李源祚의 官歷과 三政 釐正방안

The Official Life of Yi Wonjo, Eungwa and his way to improve Samjeong system
  • 배재홍

초록

영남 남인학파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로 고향인 경상도 성주에 주로 거주하였던 응와 이원조(1792-1871)는 세도정치기의 관료생활에서 동방 급제자들에 비해 차대를 받았다.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都堂錄에 입록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홍문관 관직에도 임명되지 못하였다. 또 당상관 승진도 동방 급제자들에 비해 매우 늦었다. 그러나 철종고종대에는 비록 핵심 권력기구에는 임명되지 못하였지만, 상당히 정치적 의미가 있는 관직에 중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그가 뛰어난 학문적 실력을 소유한 영남 남인학파의 대표적인 관료라는 점, 철종대 이후 세도정권의 영남 사족 포용 정책 실시, 대원군의 개혁정치 등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또 응와의 현명한 정치적인 판단력과 학문적 유연성도 도움이 되었다.한편 응와는 정통 성리학자이면서도 사회현실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 당시 봉건적 사회모순이 가장 집약되어 표출된 三政 문란의 개선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還穀 폐단의 주요인은 還多에 있다고 보고, 還摠을 줄여 진대적 성격의 환곡(斂散之還)과 부세적 성격의 환곡(仍留之還)으로 분리하여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한편 軍政 폐단의 주원인은 양인 농민들이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하여 군액이 부족해졌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에 이정방안으로 이 모칭 양반들을 다시 군역에 편입시키는데 초점을 두어 課試를 제안하였고, 또 고종대에는 口錢論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田政 폐단의 원인은 오래 동안 量田을 실시하지 않아 量案에 누락된 토지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양전이 최상의 개선 방안이지만, 양전을 실시할 수 없는 현실인 만큼 농민들이 각자 자기가 경작하는 時起田畓을 신고하도록 하여 정확한 時起結摠을 파악하자고 하였다. 아울러 응와는 삼정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私利를 추구하지 않는 현명한 수령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키워드

Donghak CathedralDanghakgasaDonghak Scripturesthe Confucian Classics of DonghakKim Ju HuiYongdamyusaDonghak CathedralDanghakgasaDonghak Scripturesthe Confucian Classics of DonghakKim Ju HuiYongdamyusa응와 이원조차대삼정환곡군정전정
제목
凝窩 李源祚의 官歷과 三政 釐正방안
제목 (타언어)
The Official Life of Yi Wonjo, Eungwa and his way to improve Samjeong system
저자
배재홍
발행일
2006-08
유형
Y
저널명
영남학
39
페이지
119 ~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