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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에서는 초대주일특사 정한경의 임면 배경과 활동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광복 직후 한일관계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주독립운동가이자 친 이승만계였던 정한경은 줄곧 미주에서 지내다가 1948년 2월 환국했다. 그의 환국 배경은 이승만의 요청 및 커니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아서 리치(Arther L. Lerch)가 미군정장관을 맡게 된 후 그의 도움을 받았던 까닭이다. 정한경은 헌법 초안 제정 작업과 총선거 감독, 서울 내 미국유학생 강연, 이화장에서 이승만과 독대하며 대통령 취임사 수정 논의 등을 했다. 1948년 10월 19일에는 이승만∙임병직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였고, 12월 23일에는 대한민국 초대주일특사로 파견되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GHQ 외교부 시볼드(William J. Sebald)의 견해를 인용하여 정한경 재임기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거나, 무능하다고 했지만, 실제 정한경이 이승만에게 보낸 보고서 및 외교부 문서를 살펴보면 인력수급, 공관 설치 및 비용 책정, 재일조선인들의 지위, 여권 문제, 배상문제 등에 있어 정한경이 직면한 일들이 적지 않았다. 이는 광복 이후 한국정부가 직면했던 초기 한일관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승만은 정한경에게 해임통보를 했다.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사실 정한경은 처음부터 공직을 맡을 의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승만의 부탁으로 초대주일특사에 취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으로 머무는 시기 재일조선인들이 그에 거는 기대는 커서 1949년 4월 1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장에 선출되었지만, 이 역시 이승만의 요청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고, 단장 피임을 거부한 후 4월 8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키워드
- 제목
- 정한경의 초대주일특사 임면과 활동
- 제목 (타언어)
- Appointment and Dismissal Activities of the First Special Envoy to Japan of the Henry C. DeYoung
- 저자
- 장경호
- 발행일
- 2022-05
- 유형
- Y
- 저널명
- 한일관계사연구
- 호
- 76
- 페이지
- 209 ~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