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근세 韓・中間 국경완충지대의 형성과 경계인식 -14세기~15세기를 중심으로-

The formation and the perception of the buffer zone around the border between Korea and China in the Middle and modern ages -Focusing on the 14th~15th century-
  • 유재춘

초록

조선시대에는 북쪽 변경지역에서 군사적인 방어의 편리성 때문에 주로 압록강—두만강에 의지하여 영토를 지키려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통상적으로 이를 국경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양분론적 영토 분할 관념에 의해 북쪽 변경의 두 江의 北岸地域을 곧 중국의 영역이라고 간주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명나라 사이의 철령 이북지역 영속문제로 인하여 고려는 전쟁을 불사하면서 공험진 이남지역의 영속을 주장하였고, 이는 명에 의해 양해되었으며, 주변의 여진인에 대한 통할권 역시 명나라는 양해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당시는 영토지배권이 군사적으로 유효한 점거범위라는 의미가 강했기 때문에 조・명 간에는 명확한 국경에 대한 협정은 없었지만 양국 사이에 국계에 대한 상호 양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조선에서는 명과 북방지역에서 여진인 귀속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군사적인 방어상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깊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강북 지역에 대한 鎭(군사적인 거점)의 이설을 고려하기도 한 점 등에서 볼 때, 북안 지역이 明나라의 영토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경원도호부 경계를 북쪽으로 7백 리되는 공험진・先春峴이라고 표기하고, 六鎭의 기사에 두만강 북안지역의 지명이 다수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인식의 결과이다. 또 이는 “遼東邊墻”을 직접적인 통치권역으로 인식하고 있는 『全遼志』와 같은 중국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지역이 明代 이래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하는 朝・淸 국경문제를 연구하는 중국학자들의 견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한편 압록강 북변의 경우 明은 요동지역을 확보하면서 조선과 접경하게 되었으나 고려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는 것을 피하고 압록강변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는 連山關에 국경 초소를 설치하였다. 이 때문에 連山關과 압록강 사이에는 넓은 공한지대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명이 압록강변에 멀리 떨어진 連山關에 국경 초소를 설치한 것은 고려 공민왕대에 있었던 遼東八站 地域과 東寧府에 대한 高麗軍의 군사적 점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당시 형편상 연산관 以東地域에 대한 군사적인 점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국 사이의 국경완충지대 기능을 하던 공한지대가 명에 의해 점거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백 년가량이 지난 후였다. 고려 말~조선 초기에 서북지역 변경의 공한지대가 1세기 가량 유지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지대에 대한 양국의 공한지대 인식이 깊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산관~압록강 사이의 공한지대를 명이 점거하였다고 하여 양국 사이의 국경완충지대가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명나라의 遼東邊墻으로부터 조선의 북방 변경지역에 이르기까지 여진인이 할거하고 있던 광활한 지대가 실질적으로 조선과 명나라간의 국경완충지대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청나라 때에 柵門이 압록강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봉황산 근처에 있었고, 청나라의 封禁地帶 설정도 일정부분 明代의 그러한 완충지대와 관련이 있다. 1712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국경에 대한 조사와 협정이 있었지만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훗날 분쟁의 소지를 남긴 것도 이러한 양국간 오랜 기간동안 존재하였던 국경완충지대와 무관하지 않다.

키워드

borderfrontiera buffer zonea long wall in Yodong(遼東)territorial rights국경변경완충지대요동변장영토권
제목
중・근세 韓・中間 국경완충지대의 형성과 경계인식 -14세기~15세기를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The formation and the perception of the buffer zone around the border between Korea and China in the Middle and modern ages -Focusing on the 14th~15th century-
저자
유재춘
발행일
2011-08
유형
Y
저널명
한일관계사연구
39
페이지
159 ~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