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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筵日記」의 板本 및 標題에 관한 書誌的 檢討
초록
「경연일기(經筵日記)」는 율곡 이이가 46세 때 완성한 것으로 명종 20년(乙丑, 1565)에서 선조 14년(辛巳, 1581), 즉 저자가 30세부터 46세 때까지 17년간에 걸쳐 경연에서 군신 간에 논란이 되었던 당시의 주요 사건과 인물들에 관해 상세히 기록한 편년체로 된 저작이다. 간행본인 「경연일기」라는 표제 이외에도 일명 「석담일기(石潭日記)」, 「석담야사(石潭野史)」, 「석담유사(石潭遺事)」라고도 불린다. 본 논고에서는 「경연일기」의 판본 및 표제에 관한 서지적 검토를 하였다. 그리고 「경연일기」의 사료적 가치 및 수록내용을 분류하였다. 또한 「경연일기」는 「석담일기」와 동일한 표제를 지니고 있으며, 「경연일기」는 『율곡전서』 판본의 표제이지만 「석담일기」 또는 「석담야사」는 정식 판본이 아니라 여러 식자들이 필사하면서 붙여진 필사본의 표제이다. 논자는 이러한 간행본과 간사본의 체제에 의문을 품고, 「경연일기」와 「석담유사」의 명칭 및 특징을 판본의 해석을 통해서 검토하였다. 또한 「경연일기」가 언제 어떤 형태로 『율곡전서』에 수록되어 간행되었는지의 편찬자의 사상사 연맥 계보까지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본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율곡의 「석담일기」는 『춘추』의 체제와 더불어 『사기』의 체제와 같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율곡전서』 간행본의 판본문제와 「석담일기」 등의 필사본 체제를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및 『한국문집총간』등의 「경연일기」와 「석담일기」 수록의 해석문제도 다소간 살필 수 있었다. 율곡의 인물평에 의한 포폄은 『사기』보다 지나쳐 상대 후손들에게 비판을 받는 면도 없지 않다. 이러한 논의는 정치적인 禍로 비출 수 있기에 후일 율곡학파들은 표제 선정에 매우 민감하고 곤혹스럽게 반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시대의 문제이자 역사성에 관한 문제이다. 檢討에 관한 考察로는 첫째, 「석담일기」 및 「석담야사」와 「경연일기」로 불리는 명칭의 문제, 둘째, 「경연일기」의 명칭과 진위문제, 셋째, 권수와 내용의 同異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경연일기」가 「석담일기」로 병칭되어 불려왔듯이 그것이 공적 일기인지 사적일기인지 아니면 正史인지 野史인지의 문제도 시대상황과 더불어 살펴보았다. 또한 이 논의는 공적 · 사적 문제와 정사 . 야사의 경계와 인물평 및 비판론과 관련하여 엄밀한 검토가 요구된다. 그리고 본 논고는 판본 및 표제에 관한 서지적 검토의 시론임을 밝혀 둔다.
키워드
- 제목
- 「經筵日記」의 板本 및 標題에 관한 書誌的 檢討
- 제목 (타언어)
- A Bibliographical Examination on the Block Book(板本) and Title(標題) of 『Kyeongyeon-ilki(經筵日記)』
- 저자
- 유성선
- 발행일
- 2009-06
- 유형
- Y
- 저널명
- 율곡학연구
- 권
- 18
- 페이지
- 87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