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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만든 시 - ‘자기서사’의 실제적 예. 2
초록
문학치료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문학 작품을 읽게 하는 것이 하나이고 문학 작품을 직접 쓰게 하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이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치료되기도 하지만 문학 작품을 씀으로써 치료되기도 하는 것인데, 후자가 분명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체험적으로 이야기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치유되었고, 문학 작품을 씀으로써 그것을 굳힐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시인이(혹은 필자가) 어떤 증상이 어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또는 씀으로써 치유되었는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글에서 필자는 ‘나를 시인으로 이끈 시’들을 통해 자기서사를 정리해 보았다. 김광균의 <설야>, 신경림의 <갈대>,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한용운의 <님의 침묵> 등에 얽힌 기억과 기억의 오류를 말함으로써 여기에 얽힌 필자의 근원적 상처가 무엇인지 추측해 보려고 하였다. 이미 필자는 다른 글- <내가 통역되는 세상에 도달할 때까지>에서 ‘나는 왜 시인이 되었나’하는 것을 스스로 탐색해 본 바가 있다. 이 두 편의 체험적 자기서사를 통해 필자는 ‘자기서사’ 연구가 가지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자기서사가 가지는 불확실성이다. 작가나 시인들은 ‘자기서사 진단검사 도구’ 등을 활용한 검사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자기서사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쓴 작품은 비록 ‘자기서사’라 직접적으로 담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자기서사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기서사가 얼마나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가, 시인들이 자기서사를 드러내는데 비교적 저항이 약한 존재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들 역시 직접적인 방식으로 자기서사를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상징이나 은유에 의존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자기서사 역시 해석의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서사’를 찾아내는 작업은 몹시도 불확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서사와 관련하여 제기할 수 있는 문제점은 자기서사가 지닌 유동성이다. 필자는 이전에 쓴 글 「내가 통역되는 세상에 도달할 때까지」에서 “제가 쓴 시에 대한 저의 생각도 수시로 바뀔 수 있으므로 여기에 쓴 얘기들이 언제까지 유효할 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2008년 1월 21일 오후 세 시 저의 시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입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자기서사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서사가 이렇게 불확실성과 유동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서사’의 진단 없이는 문학치료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서사 진단방법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키워드
- 제목
- 시인을 만든 시 - ‘자기서사’의 실제적 예. 2
- 제목 (타언어)
- A poem making a poet – A tangible example of self-description
- 저자
- 한명희
- 발행일
- 2010-01
- 유형
- Y
- 저널명
- 문학치료연구
- 권
- 14
- 페이지
- 47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