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보기
초록
본고는 조선정부가 개입한 통혼사례를 검토하고, 여진인의 통혼대상을 규정한 통혼규정이 제정된 시점의 조선정부 내 인식과 북방상황에 대해 분석하였다. 조선 건국 후 조선의 북방에서는 지역적 인접성으로 인해 여진인과 조선인의 통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통혼을 통해 조선은 대외적으로 여진인의 관할권을 주장하는 명분으로 이용하기도, 대내적으로는 여진인을 정착시킬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통혼규정이 제정된 배경은 북방경영과 밀접한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북방경영은 특히 세종의 적극적인 의지로 실행되었는데, 북방경영에 고려했던 요소 중 하나는 북방에 혼거하던 여진인과 그 정착이었다. 이 시기 통혼대상을 규정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여진 추장과의 관계가 약해진 여진인들은 이탈할 우려가 있었고, 조선이 통혼규정을 제정하여 조선과의 관계를 이어가도록 하였다. 결국 조선은 ‘오면 어루만지고, 가면 붙잡지 않는 것이 옳다.’는 정책과는 다르게 여진인의 정착에 적극 대응하였다.
키워드
여진 귀화인; 통혼; 통혼규정; 북방경영; naturalized Jurchens; intermarriage; intermarriage regulations; northern frontier governance
- 제목
- 조선초기 여진 귀화인의 통혼과 통혼규정
- 제목 (타언어)
- Intermarriage and the Regulations of Marriage Partners among Naturalized Jurchens in the Early Joseon Period
- 저자
- 김호철
- 발행일
- 2025-04
- 유형
- Y
- 저널명
- 만주연구
- 호
- 39
- 페이지
- 33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