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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1764년 榷關 세수의 운송 체계의 재편과 이를 계기로 발생한 戶部와 粵海關의 두 차례 충돌을 다루었다. 논쟁의 초점은 榷關체제에서 粵海關의 특수성을 인정할지 여부에 있었다. 우선 광동체제 해체 이후 설치된 대외 무역 세관인 “海關”에 대응하여 내지 무역 세관을 지칭하는 ‘일반 세관’ 혹은 ‘보통 세관’에 의미로 새로 출현한 “常關”을 청대 세관 전체에 적용하지 않고, 아편전쟁 이전의 명칭을 “榷關”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常關이라는 명칭이 야기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고, 청대 세관의 연속적인 이해를 가능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戶部가 명·청 시기 재정 운영의 주요 원리 중에 하나인 정액주의를 세관에 적용하여 전국에 榷關을 일원적으로 관리하는 운영 체계를 각관체제로 정의한다. 광동체제 성립 이후 청조의 유일한 對서양 무역항이 된 粵海關은 각관체제에서 매우 이질적인 존재였다. 粵海關은 관세 행정에 관한 모든 업무를 行商에게 위탁하여 처리하였고, 이로 인해 각관체제에서 규정된 것 외에 추가적인 절차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른 비용은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조달해야 하였다. 월해관의 대리 징세 구조에서 저울추의 무게 차이 문제가 존재하였다. 징세 청부업자가 관세를 징수하는 무게 기준 저울추(司碼平)와 호부가 세수를 결산하는 무게 기준 저울추(庫平)의 차이가 그것이었다. 월해관은 회계 처리 과정에서 이를 위한 추가적인 저울추 무게 조정 과정이 필요하였고, 월해관은 여기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添平銀)은 세수 운송비로 책정된 항목(水脚銀)에서 처리하였다. 1764년 榷關 세수의 운송비 산정 방식을 통일하고, 실제 운송비를 제외한 우수리 금액(節省水脚銀)을 반납할 것을 결정한 戶部의 목적은 기존에 榷關에서 불분명한 용도로 전용하던 水脚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각관체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따라 水脚銀에서 添平銀을 지출하는 문제를 둘러싼 戶部와 粵海關의 첫 번째 충돌이 발생하였다. 戶部는 각관체제에서 인정되지 않는 지출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粵海關은 水脚銀에서 添平銀을 지출해 오던 관행과 대외 무역의 특수성을 이유로 반발하였다. 첫 번째 충돌은 乾隆帝가 잠정적으로 관행대로 처리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粵海關의 添平銀에 대해 상세히 조사할 것을 지시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戶部는 粵海關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1768년 戶部와 粵海關의 두 번째 충돌로 이어졌다. 戶部는 榷關體制에서 벗어난 粵海關의 添平銀 지출을 인정하지 않고, 건륭 31년분 粵海關 세수를 결손 처리해 버렸다. 戶部는 논쟁의 초점을 저울추 무게 차이에서 세수 결손으로 전환하면서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논쟁은 乾隆帝가 호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粵海關의 예외를 승인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며 마무리되었다. 1764년 榷關 세수의 운송 방식의 재편으로 촉발된 양측의 충돌은 對서양 무역항으로서 粵海關의 특수성이 부정되고, 각관체제로 구심력이 강화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각관체제의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호부의 의도는 정액주의에 기초한 재정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월해관이 대외 무역을 관리하는 해관으로서 독자적인 관리 제도를 구축하는 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광동체제가 해체되는 원인은 월해관의 특수성이 인정받지 못하고, 각관체제의 경직된 운영 원리가 강요된 것에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키워드
- 제목
- 건륭 29년(1764) 榷關 세수의 운송 체계 재편과 그 여파 — 粵海關 특수성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Reorganization of the Queguan revenue transport system in 1764 and its aftermath -Focused on conflicts over the recognition apart from Yuehaiguan-
- 저자
- 주형준
- 발행일
- 2022-02
- 유형
- Y
- 저널명
- 중국학보
- 호
- 99
- 페이지
- 193 ~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