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孔巖縣의 승격과 陽川 지역사회 -서울史 연구의 확장 모색-

Society of the Yangcheon(陽川) Region in the Late Goryeo Period
  • 최동녕

초록

본 연구는 고려시대 孔巖縣―고려 후기의 陽川縣―에 대한 지역사를 정리한글이다. 기존에 고려시대 서울史 연구가 남경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공암현은 지금의 서울 강서・양천구 일대에 해당한다. 공암현은 본래 고구려의 齊次巴衣縣으로,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공암현으로 개칭되어 고려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으로바뀌고 현령이 설치되면서 屬縣에서 主縣으로 승격되었다. 이에 따라 충선왕대바뀐 지명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다. 충선왕대 공암현이 승격될 수 있었던배경에는 이곳이 충선왕의 후비였던 順妃 許氏의 관향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순비 허씨는 당시 재상지종으로 선정된 孔巖許氏 가문의 일원으로, 충렬왕대 활약한 첨의중찬 허공의 딸이었다. 무엇보다도 순비 허씨가 낳은셋째 딸은 원 인종과 혼인한 伯顔忽篤皇后였다. 충선왕은 원 황실과 밀접해지기위한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순비 허씨와 재혼하였다. 그리고는 그에 따른 우대의 조치로 그녀의 관향인 공암현을 주현인 양천현(현령)으로 승격시켜 준 것이라고 이해된다. 한강 유역에 위치한 양천현은 이후 고려 후기로 갈수록 지역적 입지가 중요해졌는데,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활발하던 1377년(우왕 3) 무렵에는 재추급 고위관원인 ‘陽川元帥’가 파견되기도 하였다. 당시 양천현은 1,000여 척의 배가 드나들며 ‘공부가 한데 모이는[貢賦之會同]’ 조세 운송의 요충지였다. 왜구의 침입으로 바다를 통한 조운이 어려워져 내륙 수운을 활용한 조세 운송 방식이 늘어나게 되면서 한강 유역의 양천현은 그 지역적 입지가 부각된 것이다. 남방의 공부를 모아 개경까지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과 함께, 한강 유역에서도 비교적 내륙 깊숙이 위치해 왜구의 공격으로부터 안정적인 곳이 바로 양천현이었다. 지금의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宮山은 고려 말 당시 남방에서 모인공부의 집산지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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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려 후기 孔巖縣의 승격과 陽川 지역사회 -서울史 연구의 확장 모색-
제목 (타언어)
Society of the Yangcheon(陽川) Region in the Late Goryeo Period
저자
최동녕
DOI
10.22827/seoul.2026..122.001
발행일
2026-02
유형
Y
저널명
서울과 역사
122
페이지
7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