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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명ㆍ청대 복건 종족은 엘리트와 일반 족원이란 두 바퀴로 달리는 자전거와 같았다. 이는 복건의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종족이 지속적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선택한 결과의 하나였다. 복건 사회는 당ㆍ송대 이래로 귀신을 좋아하고 음사가 발달하고 각종 민간 신앙이 성행하였고, 명ㆍ청대 사회적 불안이 심화되면서 민간 신앙 활동이 더욱 일상화,집단화, 민중화되었다. 이에 각종 신묘의 증가뿐만 아니라 이들 종사나 가묘조차 종교적 기능이 강화되었다. 종족은 족원들이 신봉하는 신령을 적극 수용하여 사묘를 건설하기도 하고 조상의 위패를 봉안하는 종사나 가묘에 족원들이 믿는 신령을 모시고 각종 종교 행사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또 자신의 성씨와 일치하는 신령의 위패나 신상을 봉안하거나, 자신들과 계보가 같지 않아도 사회적으로 신격을 인정받은 같은 신령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삼아 종족 결집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사당은 공간이 제한되어 모든 신령을 모실 수 없었으므로 신령의 영험성, 기능, 인지도, 중요성 및 구성원의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입사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충과 타협은 민간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 해결의 방식이었고 신령의 입사 과정에도 이 원칙이 적용되었다. 이에 사묘도 조상의 위패만 모신 전형적인 유교적 사당, 조상 위패와 더불어 복덕정신과 문창제군 등 소수의 신령만 모신 사당, 만신전과 같은 사당, 한 조상이나 신령을 모시는 전사 등 다양하게 되었다. 지역사회는 인적 구성이 복잡하여 새로운 결속 방법이 필요했으며 그 가운데 대표적이 것이 공동의 종교 활동이었다. 이 글에서는 검토한 세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산지의 다성 촌락인 政和縣 禾洋村의 사례다. 李姓은 이 지역의 유력 종족이지만 명성 있는 타 성씨의 신령[張巡]을 자신들의 보호신으로 삼고, 또 촌락의 공동신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혈연과 계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고 타성씨들을 포용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자신들의 위상도 높였다. 둘째, 산지의 다성 지역인 南靖縣 書洋鄕 蕭姓 지역 사례다. 한 성[蕭姓]이 중심이긴 하지만 여러 성씨가 한 촌락에 거주하거기도 하고 동일 하천 연변의 여러 단성 촌락에서 살기도 하였는데, 이주 시기가 비슷하여 오랫동안 함께 믿어온 공통 신령[保生大帝, 등]에 대한 숭배 행사을 통하여 상호협력과 단결을 확보하였다. 셋째, 20개 가까운 성씨들이 모여 사는 향촌 도시 甘棠堡다. 이곳은 종족의 독자적 사묘, 소수 종족의 공동 사묘, 전체 주민 공동 사묘 등 종교적 수요나 종족별 필요에 따라 다양한 사묘 건립과 운영 형태가 공존하였다. 이는 감당보 내에 종족간의 경쟁과 분열 가능성이 엄존함을 보여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공통 사묘[天后廟, 虎馬將軍宮 등]의 건립과 운영을 통해 감당보 내부의 경쟁과 갈등을 조정하고 종족간의 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끝으로 신령 탄생일이나 절기에 행하는 집단적인 종교 행사[遊香, 巡安, 進香 등]는 종교 행사를 넘어 해당 종족이나 지역 주민을 결집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그리고 행사를 위한 연락망 유지, 일정과 경로 확정, 비용 결정 및 징수, 대오 편성과 조직화, 지휘와 운영 등은 모두 종족과 지역사회의 조직 역량과 동원 역량을 유지하고 증강시키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明ㆍ淸代 福建 宗族의 神靈崇拜 ― 종족의 생존전략과 관련하여 ―
- 제목 (타언어)
- The gods worship of Fujian Lineages in Ming-Qing period: In relation to the survival strategy of the Lineages
- 저자
- 원정식
- 발행일
- 2018-04
- 유형
- Y
- 저널명
- 명청사연구
- 호
- 49
- 페이지
- 123 ~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