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직의 '풍교(風敎)의식'에 대한 논의

A Study on Kim Jong Jik's View of Public Morals and Its Educational Implication
  • 조현규
  • 김병희

초록

김종직은 조선 전기 사림의 기수로서 정치적 역량이 뛰어났고, 당대(當代)를 대표하는 문인이기도 했다. 그는 탁월한 문재(文才)와 근실함으로 중앙 요직에 발탁되어 당시 쟁쟁하던 훈구세력들과 교유(交遊)하며 왕화(王化)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런 가운데 그는 사림세력의 확장을 위해 현실을 인내하며 제자 교육에도 열심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종직에 대한 교육적 관점에서의 논의가 이루어져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특히 ‘풍교 의식’이라는 좀 독특한 시각에서 그의 정치 활동과 연계된 그의 교육적 업적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앞서 논의된 내용들을 요약하며, 교육적 의미를 재음미해보고자 한다. 김종직의 풍교 의식의 근저에는 유교적 인식이 매우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수기(修己)와 관련된 문예 인식은 전통유가에서 교화적 요소를 중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특히 그는 29세를 기점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유교 이념에 근거한 성리학적 교화와 강학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면서 향음주례와 향사례를 실천하여 주민을 계도하며 제자를 양성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점진적으로 유교 문화의 확산과 파급 효과를 기대하면서 바람직한 풍교의 틀을 마련해보고자 했다. 그런 가운데 민간 풍속을 순화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백성들을 교화했다. 김종직의 시대는 새 왕조의 정치적 안정을 구축하기 위한 치인(治人)이 강조되던 시대였다. 그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유교적 풍속의 개혁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러한 의식이 관련 시문에 잘 나타나 있었다. 유풍의 선양과 악행의 경계를 통해 바람직하지 못한 풍속을 개혁하려는 풍교 의식이 잘 드러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인 풍교 의식은 사당 풍토와 향교 풍토를 혁신하는 것이었다. 김종직은 성주교수로 부임한 부친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성주 향교의 공자 사당 관리가 너무 허술한 것을 보고 탄식하여 사당제도의 개혁의지를 강하게 드러내어 공자의 덕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였고, 이러한 그의 의식이 한 차원 높은 향교 풍토의 혁신으로 제시되어 15세기 중반 타락일로에 있던 향교 문화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여 타락의 원인을 진단하고, 유교적 교육만이 이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고 역설하며 유생들이 구습을 버리고 자기 혁신에 힘쓸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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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종직의 '풍교(風敎)의식'에 대한 논의
제목 (타언어)
A Study on Kim Jong Jik's View of Public Morals and Its Educational Implication
저자
조현규김병희
발행일
2006-12
유형
Y
저널명
교육철학
30
페이지
195 ~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