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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는 박인환 시와 산문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증오, 공포, 슬픔 등을 감정 정치의 차원에서 분석함으로써 그것들이 단순히 개인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해방기에서 전후(戰後) 시기에 이르는 역사·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성·순환·축적된 결과임을 규명하였다. 특히 국가 만들기 기획과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성립, 전쟁 수행 과정 등에서 주조·강제된 공통 감정이 시민들의 사유를 획일화하고 우리/적, 주체/타자의 이분법을 강화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때 박인환 시의 슬픔은 공통 감정 체계가 함의하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의 폭력과 모순을 드러내고 위계화된 타자성에 균열을 가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희구한 미적 대응이었다. 박인환은 「새로운 동시와 시민들의 합창」 서문에서 근대적·현실적 모순의 핵심 정서로 ‘증오’를 거론한다. 이에 착안하여 박인환 초기시의 슬픔의 의미를 분석하였다. 이 시기 박인환은 증오가 형성된 역사를 시화하며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분할과 배제의 정치를 드러낸다. 근대적 동일성의 폭력이 실행되는 데 있어 감정이 타자의 몸을 구분 짓는 지점을 포착한 것이다. 「인천항」에서처럼 슬픔의 역사를 추적하며 타자의 몸에 새겨진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는 김기림, 오장환 등의 시적 작업을 계승하면서도 슬픔의 역사를 전경화하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이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에서도 드러나지만 성급한 공감이 수반하는 폭력이 노출되며 기존 지배 이데올로기가 수행했던 폭력의 구조는 반복하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방기 수행되었던 증오의 정치는 한국전쟁 전후 더욱 강화되었으며 세 차례의 전향 성명서 발표라는 이례적 사건이 상징하듯 박인환은 그것에 깊이 연루되었다. 그 결과 박인환 전쟁 관련 산문에는 당대 국가가 조성하고자 한 증오, 공포 등이 공적 내러티브화 되어 나타난다. 공포는 증오와 연동되며 배제와 혐오의 정치를 강화하였고 전쟁 수행을 위한 감정으로 동원되었다. 한편, 당대 정훈 문학은 숭고의 감정을 통해 “祖國”이라는 상상된 공동체에 “殉”하도록 이념을 통제하는 기제였다. 하지만 정훈 시집 창궁 에 수록된 「신호탄」은 비애의 정서를 드러냄으로써 절대적 심급으로서의 국가 형성을 지연하는 효과를 산출한다. 이러한 양상은 「어린 딸에게」, 「서적과 풍경」, 「어느 날」 등의 시에서 확장되고 나아가 슬픔은 자유에 배치되며 타자 지향성, 이데올로기의 허위 등으로 의미화된다. 궁극적으로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는 슬픔을 통해 타자와 공감하고자 했던 시이며 새로운 자유 공동체를 지향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박인환 시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의미를 제안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혐오에 의해 분열되고 자유를 주장하면서 자유를 제한하려는 세계에서 슬픔을 자유에 배치한 박인환의 시세계는 ‘자유’의 차원에서도 논구될 필요가 있다.
키워드
- 제목
- 박인환 시의 감정 정치와 슬픔의 공동체
- 제목 (타언어)
- The Politics of Emotion in Park In-hwan’s Poetry and the Community of Sorrow
- 저자
- 류상범
- 발행일
- 2025-09
- 유형
- Y
- 저널명
- 어문연구
- 권
- 125
- 페이지
- 267 ~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