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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금까지 우리에게 『종리호로』 수용 및 간행의 주체로 알려졌던 박엽은 친구인 허균과 함께 중국소설을 탐독한 인물로서 고전소설사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부각될 수 있었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인조반정 직후 반정을 주도했던-정치적으로 박엽과 반대의 위치에 있었던-서인 세력에 의해 급작스레 처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갑작스레 죽음을 당한 박엽에 대한 평가와 기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극단적인 변화를 보이는 양상과 그 이유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처형 전후 박엽은 재물을 탐하고 학정을 저지른 가혹한 관리로 기억되었는데, 그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시선은 18세기부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9세기에 들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기억으로 변모한다. 19세기 기록 속 박엽은 만주족 장수인 용골대와 마부대를 지레 겁먹게 하는 존재, 만주족의 우두머리인 누르하치와의 대결에서 단숨에 승리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만주족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그 만주족이 중원을 장악하는 현실을 목도한 당대인들에게, 박엽과 같이 효과적으로 북방 영토를 막아냈던 인물이 이념적으로 절실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19세기에 들어 보다 강화된 중화주의적 가치를 견지했던 이들에게 박엽과 같은 인물이 새롭게 기억되고, 이에 따라 그의 삶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념적 요구에 따라 박엽은 처형 직후에는 중화주의의 배반자로 낙인 찍혔다가 나중엔 오히려 중화주의의 수호자로 추앙받는 흥미로운 변모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朴燁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과 그 의미- 1623년 處刑 前後부터 1864년 官職 回復 前後까지의기록을 대상으로 -
- 제목 (타언어)
- The reformation meaning of remembrance about Park Yup(朴燁)
- 저자
- 엄태웅
- 발행일
- 2013-01
- 유형
- Y
- 저널명
- 우리어문연구
- 호
- 45
- 페이지
- 137 ~ 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