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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과 물질문화적 의미
초록
한강 배다리 건설에 관한 기록들과 시작품들은 正祖朝 물질문화의 우수함과 다채로움을 잘 보여준다. 먼저 正祖朝 한강 배다리는 당시 과학기술의 우수함을 잘 보여준다. 正祖朝 한강 배다리의 하부 구조 결합 공법, 상부 구조 결합 공법, 가변형 선창다리, 연성 구조체 등은 배다리의 견고함과 안전성을 극대화하는 기술공학의 결정체였다. 여기에 舟橋司를 설립하고 『舟橋指南』 등을 통해 교랑 가설 기술을 매뉴얼로 정리하여 해마다 교량 건설 작업에 활용했다는 점도 기술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이러한 철저하고 치밀한 기록정신은 『園幸乙卯整理儀軌』, 『華城城役儀軌』 등으로도 이어져 오늘날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산이 되었다. 이러한 물질문화의 성과는 正祖의 높은 역량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한강 배다리 건설 사업의 성공적인 운용은 正祖의 기술과학적인 인식 수준과 왕권을 강화하고 민심을 잘 헤아려 원활한 국정운영을 도모했던 애민의식과 정치의식이 있어 가능했다. 아울러 당대 문인들의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물과 시적 형상화 작품들은 수준 높은 물질문화를 왕과 사대부들이 소통하면서 공유하고, 그 문화적 유산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한강 배다리에 의한 물질문화를 왕실과 사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함께 향유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과 시적 형상화 작품들은 당대의 기술, 문화, 정치, 문학적 역량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물질문화는 正祖의 뛰어난 역량과 조선 후기 과학기술의 높은 수준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일의 공적[事功]을 중시하고 사물의 이치 탐구와 합리적 문제 해결력을 지향했던 正祖의 사유 방식이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正祖 또한 성리학적인 심성론을 바탕으로 한 사유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리고 正祖는 견고한 제왕 중심의 관료제도를 공고히 했다. 그리하여 한강 배다리에 관한 물질문화는 19세기에 접어들며 더 이상의 기술 문명 발전과 물질문화의 확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방식이나 준거의 혁신적인 전환, 즉 패러다임의 갱신이 필요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正祖朝 한강 배다리에 관한 기록과 물질문화적 의미
- 제목 (타언어)
- Record of King Jeongjo Han river’s Pontoon Bridge and its material culture meaning
- 저자
- 이국진
- 발행일
- 2020-02
- 유형
- Y
- 저널명
-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 권
- 55
- 페이지
- 245 ~ 284